1) 피부암의 개요와 발생 기전
피부암은 피부를 이루는 다양한 세포—각질형성세포, 멜라닌세포, 부속기 세포—가 비정상 증식을 일으켜 형성되는 악성 종양을 말한다. 임상에서 가장 흔한 형태는 기저세포암(Basal Cell Carcinoma, BCC), 편평 세포암(Squamous Cell Carcinoma, SCC), 그리고 흑색종(Melanoma) 세 가지다. 기저세포암은 전체 피부암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성장 속도가 느리고 원격 전이가 드물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주변 조직을 깊게 파고들어 미용적·기능적 손상을 남긴다. 편평 세포암은 자외선 축적 손상, 만성 상처나 흉터 부위, 면역저하 상태에서 더 흔하며, 림프절 전이 위험이 기저세포암보다 높다. 흑색종은 악성도가 가장 높아 조기 발견이 예후를 좌우한다.
피부암의 근본적인 촉발 요인은 자외선(UV)이다. UVB는 DNA에 직접적인 이합체(pyrimidine dimer)를 형성하여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고, UVA는 활성산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산화적 손상을 유발한다. 이 반복적 손상은 p53 같은 종양억제 유전자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세포 주기 조절이 흐트러지면서 변이 세포가 축적된다. 흑색종에서는 BRAF, NRAS, KIT 등 신호전달 경로의 변이로 MAPK 경로가 과활성화되는 경우가 많아, 세포 증식과 침윤성이 강화된다. 여기에 개인적 감수성이 더해진다. 피부색이 밝고 주근깨가 많은 사람, 어릴 때부터 야외 활동이 잦았던 사람, 화상을 반복 경험한 사람은 위험이 높다. 장기 면역억제제 복용자(장기 이식, 자가면역질환 치료 등)나 인간유두종바이러스·비소 노출, 만성 방사선·타르·자외선 인공광원 접촉 등 직업성 요인도 발병에 기여한다.
발생 부위는 햇빛이 자주 닿는 얼굴, 두피, 귀, 목, 손등이 대표적이지만, 흑색종은 발바닥·손바닥·손톱밑 같은 비노출 부위에서도 생길 수 있다. 동양인에서 비교적 흔한 말단흑자형 흑색종이 그 예다. 결국 피부암은 “누적된 빛의 흔적” 위에 개인의 유전적 감수성과 환경 요인이 더해져 발생하는 질환이며, 그 시작점은 작고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반점 하나일 수 있다.
2) 임상 스펙트럼과 위험군: 증상이 말해주는 것들
피부암의 임상 양상은 암종과 병기에 따라 폭넓다. 기저세포암은 반짝이는 진주빛 결절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표면에 미세 혈관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중앙 함몰과 궤양이 나타나며 가장자리가 말굽처럼 올라오는 모양이 전형적이다. 편평 세포암은 붉고 거친 과각화 판 위에 딱지가 잘 생기고, 손으로 문지르면 쉽게 피가 난다. 입술(특히 하순), 귀, 두피 같이 햇빛에 노출되는 부위에서 자주 보이며, 장기간 치유되지 않는 상처나 화상 흉터 가장자리의 “두꺼운 살”로 시작하기도 한다. 흑색종은 ABCDE 법칙이 유용하다: A(비대칭), B(경계 불규칙), C(색조 다양), D(직경 ≥6mm), E(진화·변화). 여기에 “새로운 점이 생겼다”, “기존 점이 가렵거나 피가 난다”, “최근 몇 달 사이 급격히 커졌다” 같은 변화 신호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위험군을 이해하는 일은 조기 진단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하다. 첫째, 개인 피부형과 과거력: 피부가 희고 쉽게 타는 사람, 어린 시절 심한 자외선 화상을 겪은 사람, 다수의 비정형 모반을 가진 사람은 고위험군이다. 둘째, 면역 억제: 장기 이식 환자나 후천성 면역저하 상태에서는 특히 편평 세포암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셋째, 직업·환경 요인: 농업·어업·건설업 종사자처럼 야외 근무가 잦거나, 용접·방사선·타르·비소에 노출되는 직군은 예방 교육과 보호 장비 착용이 필수다. 넷째, 가족력·유전 증후군: 가족성 흑색종, 색소성건피증(xeroderma pigmentosum) 같은 DNA 복구 장애 질환은 어린 나이부터 철저한 차단과 감시가 필요하다.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대목은 비노출 부위 흑색종이다. 발바닥·발가락 사이·손톱밑은 환자 스스로 잘 보지 않는 곳이라 발견이 늦는다. 손톱이 갈라지거나 검은 세로줄이 번지고(특히 한 손가락에만), 큐티클을 넘어 피부로 번지면 바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점이 아닌 창백한 결절이나 피가 잘 나는 붉은 혹도 초기 SCC/BCC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즉, 피부암은 “검은 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변화하는 병변, 낫지 않는 상처, 설명 안 되는 출혈—이 세 가지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간단한 경고등이다.
3) 진단 알고리즘: 현미경으로 보기 전, 눈으로 끝까지 본다
피부암 진단의 출발점은 결국 시진과 촉진이다. 병변의 대칭성, 경계, 색의 분포, 표면 질감, 궤양·출혈 여부, 위성 병변의 존재를 체계적으로 확인하고, 이때 더모스코피(피부확대경)를 활용하면 맨눈으로 보기 어려운 혈관 패턴, 색소 네트워크, 청백면(blue-white veil) 같은 미세 소견을 파악할 수 있다. 더모스코피는 특히 흑색종과 양성 모반의 감별에, BCC의 특유한 가지형 혈관·잎새 모양 구조를 포착하는 데 유용하다.
다음 단계는 생검(biopsy)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능한 한 전체를 포함하는 절제 생검으로, 병변의 가장 깊은 침윤 부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흑색종이 의심되면 얕은 면도 생검은 피하고, 두께(Breslow 두께) 측정을 위해 전층 생검을 선호한다. SCC/BCC에서는 펀치 생검만으로도 진단에 충분한 경우가 많지만, 경계가 불명확하거나 병변 이질성이 크면 대표성을 고려해 다부 위에서 채취한다. 병리 결과에는 종양 종류, 분화도, 침윤 깊이, 신경·혈관 침범 여부, 절제연 상태가 포함되어야 하며, 이는 곧 치료 계획의 설계도다.
흑색종에서 병기 결정을 위해 감시 림프절 생검(SLNB)을 검토한다. 일반적으로 Breslow 두께 ≥0.8mm(또는 궤양 동반)에서 적응증이 되며, 해당 림프절에 미세 전이가 있으면 보조 치료(면역·표적치료) 논의를 시작한다. 원격 전이 평가에는 CT, PET-CT, 뇌 MRI가 병기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SCC의 고위험군(두꺼운 병변, 신경침윤, 귀·입술·두피, 면역저하)은 경부·액와·서혜 림프절 평가가 필요하다. BCC는 원격 전이가 드물지만, 광범위 재발·기저세포모반증후군에서는 영상 평가를 동원한다.
검사 자체만큼 중요한 것은 진단의 타이밍이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이 나올 때, 그 조금이 수개월이라면 이미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3~4주 이상 낫지 않는 상처, 최근 수개월 사이 가파르게 변한 점, 반복 출혈 병변은 초기 진단 창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진단은 복잡하지 않다. 다만, 미루지 않는 것이 어렵다.
진단 포인트: 더모스코피 → 대표성 있는 생검 → 병리 보고(종류·분화·깊이·절제연) → 필요시 SLNB·영상으로 병기 완성.
4) 치료 전략: 절제의 원칙과 약물의 시대가 만나는 지점
피부암 치료의 1차 원칙은 완전히 절제와 국소 재발 최소화다. BCC와 SCC는 병변 경계를 고려한 외과적 절제가 표준이며, 미용·기능 보존이 중요한 얼굴 부위에서는 모즈 미세도식수술(Mohs micrographic surgery)이 뛰어난 국소 제어와 조직 보존을 동시에 달성한다. 병변을 얇게 절제하고, 절제연을 즉시 현미경으로 확인해 암세포가 남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는 방식이다. 재발성·경계 불분명·고위험 해부학 부위 병변에서 특히 유리하다.
수술이 어렵거나 고령·기저질환으로 전신마취가 부담될 때는 방사선 치료가 대안이 된다. 표면 병변에서는 표적 표면 방사선으로 충분한 제어가 가능하며, SCC에서 림프절 침범 위험이 높거나 절제연 양성일 때 보조 방사선 치료가 권고된다. 국소 치료제(이 마퀴모드, 5-FU)는 표재성 BCC·전암 병변(광선각화증)에서 선택지며, 광역학 치료(PDT)는 미용적 결과가 좋은 편이다. 다만 침윤성·고위험 병변에서는 외과적 치료가 우선이다.
흑색종은 충분한 안전 절제연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병기·두께에 따라 0.5~2cm 범위로 절제연을 설정하고, 적응증에서 감시 림프절 생검을 병행한다. 림프절 전이가 확인되더라도 과거처럼 광범위 림프절 곽정을 일률적으로 시행하진 않으며, 영상 추적과 보조 전신치료로 전환하는 추세다. 전신치료의 지형은 지난 10년 사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면역항암제(anti–PD-1, anti–CTLA-4)는 전이성 흑색종의 생존율을 크게 끌어올렸고, 표적치료(BRAF/MEK 억제)는 해당 변이 양성 군에서 빠른 종양 축소를 이끈다. 병기 III 고위험군에서는 수술 후 보조 면역/표적치료가 재발 억제에 기여한다.
진행성·재발성 BCC에는 hedgehog 경로 억제제(비스모데깁 등)가, 전이성·수술 불가능 SCC에는 PD-1 억제제가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모든 약물은 면역 관련 이상반응(피부 발진, 대장염, 간염, 내분비 장애)이나 표적치료 특유의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어, 다학제 팀이 모니터링·조절한다. 치료의 핵심은 “암을 없애는 것”과 “사람을 남기는 것”의 균형이다. 즉, 충분히 강하게—그러나 불필요하게 과하지 않게—맞춤 설계를 해야 한다.
치료 요약: BCC·SCC → 수술 중심(모즈 포함), 보조 방사선·국소 치료 선택 / 흑색종 → 충분한 절제연 + SLNB + 병기별 면역·표적치료.
5) 재발, 장기 추적, 그리고 삶의 질
피부암은 보이는 암이지만, 치료 이후의 흔적도 보이는 암이다. 얼굴과 손 같은 노출 부위 수술은 미용적 결과가 환자의 자존감·사회생활에 직결된다. 따라서 절제 계획 단계부터 절개선 방향, 피판·이식 선택, 흉터 관리(실리콘, 테이핑, 레이저) 전략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BCC는 장기 재발이 가능하고, SCC는 고위험군에서 림프절 전이 위험이 높다. 흑색종은 병기·두께·궤양 여부에 따라 추적 주기를 세분화한다. 일반적으로 초기 수년은 3~6개월 간격, 이후 연 1회 검진이 권장되며, 환자 교육을 통해 자가 피부검진을 습관화한다. 거울·사진을 이용해 동일 각도에서 매달 기록하면 작은 변화도 조기에 포착할 수 있다.
삶의 질 관점에서는 광과민과 색소 변화, 흉터 통증, 말초 감각 이상 같은 신체 증상과 함께, “또 생기지 않을까” 하는 예기불안이 흔하다. 면역항암제 치료 환자라면 피로·관절통·피부염 등 만성 부작용이 일상 기능에 영향을 준다.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통증클리닉, 재활·피부레이저 센터와 연계해 다학제 관리를 시행한다. 장기 면역억제 환자(장기 이식 등)는 매 3–6개월 꼴의 전신 피부 검진이 필수이며, 직업상 자외선 노출이 많은 사람은 작업환경 개선·보호구 지급·근무 스케줄 조정 등 산업보건적介入이 병행돼야 한다.
환자 스스로 지켜야 할 원칙은 간명하다. 첫째, 치료 후에도 자외선 차단을 평생 습관으로 만든다. 둘째, 상처는 빛 차단과 보습이 흉터 예후를 좌우한다. 셋째, 새로운 병변을 발견하면 미루지 말고 진료를 본다. 넷째, 면역치료·표적치료 중이면 미열·설사·기침·피부 발진 같은 신호를 즉시 의료진과 공유한다. 다섯째, 금연·절주·규칙 운동은 면역과 피부 노화 모두에 이득이다. 암은 치료실에서만 다루는 문제가 아니다. 집·직장·햇빛이 있는 모든 공간에서 관리가 계속된다.
6) 예방과 생활습관: 가장 강력한 치료는 시작되지 않게 하는 것
피부암은 예방 가능한 암 중 가장 명확한 타깃을 가진다. 바로 햇빛(자외선)이다. 실천 지침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1) 오전 10시~오후 4시 강한 햇빛 시간대에는 그늘을 찾는다. (2) SPF 30 이상, PA 등급이 높은 광범위 자외선차단제를 외출 15–30분 전에 충분량(성인 얼굴 기준 2mg/cm², 약 1/3~1/2 티스푼)을 바르고, 땀이 나거나 물놀이 후, 야외 활동 중에는 2시간마다 덧바른다. (3) 챙 넓은 모자, 자외선 차단 안경, 긴소매·긴 바지, UPF 의류를 착용한다. (4) 인공 태닝은 금지한다. 피부암—특히 흑색종—위험을 유의하게 높인다. (5) 유아·소아에게는 그늘·모자·의복이 1차 전략이며, 6개월 이후에는 자외선차단제를 보조적으로 적용한다.
영양·보충제 측면에서는 비타민 D를 햇빛 노출로만 해결하려는 시도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음식·보충제를 통한 보충이 더 안전하며, 필요시 혈중 농도 측정을 통해 용량을 조절한다. 흡연은 피부노화·치유 지연뿐 아니라 SCC 위험을 높인다.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건선·루푸스 등) 환자는 질환과 치료로 인해 광과민 상태가 될 수 있어 전문의와 맞춤형 차단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고위험군—밝은 피부, 비정형 모반 다수, 가족력, 면역저하—은 6–12개월마다 정기 피부검진을 받고, 더모스코피 기록과 전신사진 보관을 권장한다.
지역사회·학교·직장에서의 햇빛 안전 교육도 중요하다. 체육 시간과 야외행사에서 그늘 제공, 제복·모자 기준 마련, 자외선 지수 안내, 건설 현장·야외 근로자의 보호구 착용 의무화가 실효성 있는 예방책이다. 결국 예방은 한 사람의 선택이면서, 동시에 환경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그늘을 만들고, 일터가 보호구를 제공할 때, 개인의 노력은 비로소 완성된다.
예방 체크리스트: 차단제 → 보호복/모자/선글라스 → 인공 태닝 금지 → 정기 검진(고위험군 6–12개월) → 생활습관(금연·운동·보습).
결론: 태양을 두려워하기보다, 정확히 다루는 법을 배우자
피부암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흔한 암 중 하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잘 예방할 수 있고 가장 빨리 발견할 수 있는 암이기도 하다. 자외선이 유발하는 분자 수준의 손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결과물은 피부 표면의 작은 변화로 드러난다. 그 신호를 읽을 수 있느냐가 예후를 갈라놓는다. 낫지 않는 상처, 변해가는 점, 반복 출혈—이 세 가지에 즉각 반응하는 습관은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값싼 보험이다.
치료는 분명 좋아졌다. 모즈 수술은 덜 자르고 더 정확하게 암을 없애고, 면역·표적치료는 전이성 흑색종에서도 새로운 생존 곡선을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치료는 “시작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상의 그늘 찾기, 차단제의 꾸준함, 보호복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작은 선택들이 장기적으로 거대한 차이를 만든다. 치료가 필요한 순간에는 두려움보다 표준 치료의 원칙을 신뢰하자. 충분한 절제연, 적절한 보조치료, 부작용 모니터링, 그리고 환자 삶의 질을 존중하는 결정—이 네 가지가 함께 갈 때, 암을 없애는 것과 사람을 지키는 것이 양립할 수 있다.
피부암 관리는 병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집 앞 골목의 햇빛, 사무실 창가의 오후, 주말 산책과 아이의 소풍까지, 우리의 하루를 이루는 작은 순간들 속에 답이 있다. 태양을 두려워하기보다, 정확히 다루는 법을 배우자. 그 지식과 습관이 우리와 우리 가족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방패다.

